'적자 늪' 한국GM 어디로

정부 "호구 잡히진 않겠다"
미래차 개발·생산도 맡겨야… 차입금 출자전환도 필요

압박 수위 높이는 미국GM
최대 3조 증자 참여 제안… 저금리 대출 재개도 요구
전문가 "정부 딜레마 상황… 자금지원 서두르면 안돼"

미국 GM 본사가 한국 정부에 한국GM에 대한 자금 지원을 요청한 가운데 12일 한국GM 직원들이 인천 부평공장 서문을 나서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한국 정부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M) 간 치열한 ‘기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다.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한국GM에 대한 자금 지원 여부와 방식, 구조조정 방향 등을 놓고서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호구(虎口) 잡히진 않겠다”는 분위기다. 무턱대고 자금 지원에 나설 수 없다는 얘기다.

◆회생 가능성 확인이 우선

GM의 요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한국 정부와 산은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우선 GM 요구에 대한 진정성과 현실성을 따져볼 계획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지난달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GMI) 사장이 찾아와 경영 애로사항을 얘기했다”며 “한국GM에 대한 중·장기 투자 및 경영개선 계획을 말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갖고 오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GM에 대한 자금 지원을 논의하기에 앞서 한국GM 현황과 재무구조 개선 계획 등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뜻이다. GM 본사가 한국GM을 구조적인 ‘적자의 늪’에 빠뜨린 것 아니냐는 의혹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이전가격’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GM 본사가 부품 등 원재료 가격을 비싸게 넘기고 한국GM이 만든 완성차와 반조립제품(CKD) 등을 싸게 받아 해외 시장에 팔았다는 의혹이다. GM 본사가 한국GM을 상대로 ‘이자놀이’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GM은 지금까지 GM 본사로부터 연 4.8~5.3%의 비싼 이자를 내고 3조4000억원 가까운 돈을 빌렸다.

◆중·장기 생존 기반도 마련돼야

한국 정부와 산은은 자금 지원을 위해선 한국GM의 중·장기 생존 기반도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소 연 30만 대 이상을 추가로 수출할 수 있는 글로벌 신차를 한국GM에 배정하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개발과 생산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GM이 최대 주주로서 한국GM 부실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낼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국GM이 본사로부터 빌린 대여금(3조4000억원)을 상당 부분 출자전환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향후 이자비용도 절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GM이 출자전환을 통한 증자 참여 외에 기존 주식을 소각하고 어느 정도 신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요청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GM이 상환받기 힘든 ‘썩은 돈(대여금)’만 출자전환하는 게 아니라 신규 자금(뉴 머니)을 넣어야 산은도 증자에 참여할 명분이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2002년 맺은 주주 간 계약이 지난해 10월 만료되면서 산은의 특별결의 거부권(비토권)이 없어졌는데, 자금을 투입할 경우엔 경영 의사결정에 대한 동의권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벼랑끝 전술에 휘둘려선 안돼”
GM은 한국 철수설을 흘리며 정부와 산은을 압박하고 있다. GM의 포괄적 지원 요구 중 핵심은 최대 3조원 안팎의 증자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이다. 이 경우 산은이 새로 넣어야 할 돈은 5000억원 안팎에 이른다. 여기다 산은이 낮은 금리로 한국GM에 대출을 재개하고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등을 통한 세금 감면 등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에 이어 최근 다시 방한한 엥글 사장은 “GM이 글로벌 신차 생산 및 판매 계획을 조만간 마무리해야 한다”며 “최대한 빨리 ‘답’을 달라”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선 GM이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협력업체 및 이해관계자를 합쳐 30만 명의 일자리가 걸린 한국GM이 문을 닫도록 내버려두기엔 한국 정부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자금 지원에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회생이 불투명한 기업에 혈세만 쏟아붓는다는 비판 탓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자금 지원 여부를 서둘러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벼랑 끝 전술을 쓰는 GM에 휘둘리면 안 된다”며 “서둘러 뭔가 결론을 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GM에 대한 산은과 금융당국의 실사 등을 거친 뒤 의사 결정을 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장창민/도병욱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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